2022.12.06 (화)

장애인식 개선대회 수상작 모음

<2022 안화중 장애인식개선대회 표어 부문 수상작>

 

1. 최우수상 (2학년 2반 16번 최준원)

차별은 갈등의 씨앗, 배려는 우정의 씨앗

 

2. 우수상 (2학년 2반 26번 신문주)

차별과는 거리두기, 이해와는 함께하기

 

3. 우수상 (2학년 9반 23번 송채원)

편견없는 시선, 공감하는 마음, 하나되는 우리

 

<2022 안화중 장애인식개선대회 글쓰기 부문 수상작>

 

1. 최우수 (1학년 6반 23번 남서아)

제목: 너의 별

 

너는 다가가기엔 너무 어렵고

남들과 다른 단단한 벽 뒤에 숨겨져 있는

수수께끼 같다.

 

모든 사람들이

그 벽의 틈새를 본다면,

 

그 틈새 사이로 나는 너의 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보니

 

어느새 너의 벽은 사라져 있었고

 

그 수수께끼의 벽 뒤엔

남들과 다른 ‘너’가 아니라

 

남들과 같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너였다.

 

‘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보니

’너‘는 꽃처럼 활짝 웃고 있더라.

 

2. 우수 (1학년 4반 29번 장서윤)

제목: 나의 친구

 

나에겐 친구가 있다.

함께 학교로 걸어가는 친구가 있다.

친구의 느린 걸음에 맞추어 걷다 보면

바삐 움직이는 사회에서

잠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겐 친구가 있다.

수업 시간에 항상 점자 교과서를 들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교과서는 항상 무겁다.

그래서 이동수업을 할 때는 내가 교과서를 들어 준다.

그럴 때마다 체력단련이 되는 것 같아 좋다.

 

나에겐 친구가 있다.

쉬는 시간에 함께 수화로 이야기하고 장난도 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수화를 하다 그 친구가 가끔 미소를 내보이면

내 마음에 꽃들이 만개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에겐 친구가 있다.

점심시간에야 우리 반에 들어오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실수를 많이 하고 감정이 격한데

나는 그 친구의 그런 점까지 좋다.

그 친구의 실수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산다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그 친구의 감정은 풍부하여

감정이 변할 때마다 우리에게 웃음을 안겨 준다.

 

나에겐 친구들이 있다.

느리게 걷는 친구에게는 마음껏 세상을 누비는 다리가 되어주고,

점자 교과서를 들고 다니는 친구에게는 밝은 세상을 보는 눈이 되어주고,

수화로 이야기하는 친구에게는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귀가 되어주고,

실수를 많이 하는 친구에게는 실수를 해도

위로해줄 수 있는 부모님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모든 친구들과 함께 걸어나가는 동반자가 되고 싶다.

 

나에게는 친구들이 있다.

서로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

그 매력이 장애라 하여도

그것조차 특별한 매력이다.

함께 사는 우리 모두는 친구다.

 

3. 우수(1학년 8반 22번 김하린)

제목: 우리가 아는 그들, 우리가 몰랐던 그들

 

나는 초등학교 학년 때 지적 장애인 친구를 처음 만났다.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난 ‘그 아이가 불쌍하다. 안됐다. 도와줘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애를 조금씩 도우려 했다. 하지만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면에서 그 아이는 언제나 웃고 있었고,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 답했다. 처음에는 “아무 걱정이 없으니까 저러겠지.” 하고 넘겼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6학년이 됐을 때,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그때도 그 아이는 웃고 있었다. 학교와 친구들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하루는 그 아이가 자기도 다른 아이들처럼 가위로 미술 수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모두가 당황했다. 선생님은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셨다.

“조심해야 해.” ‘그런데 돌아오는 그 아이의 대답은 예상외였다.

“왜요..? 제가 위험한가요? 제가 실수할까봐 그러는 거예요? 전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요..?”

이 말은 내 정곡을 찔렀다. 아무도 몰랐다, 그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는. 늘 웃었기에 이런 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을 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을 가지고 태어나듯 지적 장애인 친구들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가 불쌍해 보였던 내가 창피해졌다. 그들의 생활은 우리와 다를 게 없고 늘 행복한데,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동정한다. 그 동정이 장애인들에게는 따뜻한 말이 아닌, “너희는 우리랑 달라”라고 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TV 프로그램에서도 많은 장애인 운동선수, 요리사, 연예인들이 나온다. 그런 이들이 나오면 모두들 “와.. 힘들었을 텐데 장애를 이겨내고 꿈을 이뤄내다니 대단해.” 라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누군가가 아닌, 그냥 선수, 요리사, 연예인, 사업가 등처럼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장애를 극복해낸 사람은 없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꿈을 꿨던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 꿈을 이뤄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장애인들도 평범한 가정의 아주 아주 소중한 아들, 딸이다. 우리가 함부로 동정심을 품을 대상이 아니다. 불행한 사람이 아닌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고, 꿈을 꾸는 사람일 수도 있고, 우리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니 동정심을 품기 전에 먼저 다가가 인사해 오는 것은 어떨까? 그러다 보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면에서 조금씩 배려하자, ‘각자’가 아닌 ‘우리’가 될 때까지.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